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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직자 맹의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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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문 “맹의순의 순교” (신재의 장로)바로가기
  • 논문 “십자가의 길” : 국교회가 선교적인 교회가 되기 위해 가야할 길 (허성식 박사)바로가기
  • 논문 ‘전쟁포로’ 맹의순이 기록한 《일기》에 나타난 그의 ‘목회’ (장신대 김시규 전도사)바로가기
순직자 맹의순

전쟁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한 '포로들의 성자' 맹의순 선생이 총회 순직자로 추서됐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순교 · 순직심사위원회는 2019년 2월 10일(주일) 섬기시던 우리 남대문교회에서 '故 맹의순 선생 순직자 지정 감사예배'를 드리고 맹의순의 삶을 통해 증언된 십자가 정신을 다시 찾아 '하나님 나라의 공적인 교회'가 될 것을 다짐했다.

맹의순은 남대문교회 중등부 교사로 봉사하며 조선신학교 3학년 재학 중에 6.25전쟁을 맞는다. 서울이 함락되고 피난길에서 인민군으로 오해를 받아 부산 동래구 거제리 포로수용소(現 부산 연제구 거제동)에 갇힌다. 그러나 그 안에서 군용 천막 2동을 연결한 '광야교회'를 세워 포로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사랑을 실천했다. 소설가 정연희의 '내 잔이 넘치나이다'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한 그는 2017년 홍성사에서 출간한 육필일기 '십자가의 길'이 번역 출간되면서 이름을 다시 그리고 더 널리 알리게 되었다.

  • 맹의순 선생 순직자 지장 감사예배
    청년부원들이 10일 열린 ‘故 맹의순 선생 순직자 지정 감사예배’에서 디트리히 본 회퍼가 지은 시에 곡을 붙인 '선한 능력으로'를 합창하고 있다.
  • 맹의순 선생 순직자 지장 감사예배
    총회순교순직자심사위원장인 김완식목사가 청년회장 김준성(왼쪽)과 맹선생의 제자인 손호인(오른쪽)은퇴집사에게 순직기념동판을 수여하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순직기념동판을 받은 손 집사는 한글, 한문, 일어, 영어, 독일어 등으로 기록된 맹의순의 육필일기 ‘십자가의 길’을 번역해 출판의 길을 열었다. 육필일기 원본은 맹의순과 함께 거제리 수용소에서 사역한 이원식 목사(국일교회 원로, 2017년 별세)가 보관하고 있다가 2016년 남대문교회에 기증한 것이다.
  • 맹의순 선생 순직자 지장 감사예배
    박제훈목사(토론토교회원로)가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맹의순, 나의 귀한 친구, 주님 말씀대로 원수를 내 몸 이상으로 사랑하다가 갈길을 다간, 주님의 제자! 귀한 교회의 중등부를 부흥시킨 귀한 선생님, 귀한 교회가 있어서 성자를 키워주신 교회를 사랑합니다.”
  • 맹의순 선생 순직자 지장 감사예배
    맹의순의 제자였던 정창원(91) 은퇴 장로는 “맹 선생님은 영어와 일어에 능하고 헬라어까지 하셨던 멋진 분 이었다”고 회고했다.
  • 맹의순 선생 순직자 지장 감사예배
    소설 ‘내 잔이 넘치나이다’의 저자 정연희 권사는 “순직자가 된 맹의순 선생의 삶을 본받아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참회하며 살자”고 했다.
  • 맹의순 선생 순직자 지장 감사예배
    총회순교순직자심사위원장인 김완식 목사(왼쪽)가 남대문교회 이종렬 장로에게 맹의순 선생 순직인증서를 수여하고 있다.
  • 맹의순 선생 순직자 지장 감사예배
    당회서기 나규찬 장로가 맹의순 선생 제자 한인수(왼쪽) 장군에게 교회에서 준비한 기념품을 전달하고 있다.
  • 맹의순 선생 순직자 지장 감사예배
    행사 후 기념촬영
출생
1926년1월1일평양시 상수리 277번지에서 맹관호 장로의 2남2녀중 차남으로 출생
약력
1934년숭덕 소학교 입학
1940년숭덕 소학교 졸업
1940년평양 제2 공립중학교 입학
1945년평양 제2 공립중학교 졸업
1946년연희 전문학교 신학과 입학, 1년 다닌 후 중퇴
1947년한국 신학 대학 입학
1950년한국 신학 대학 학부 3학년 재학 중 6.25 발발
경력
1946년크리스마스-1950년6월25일까지 세브란스 병원 새벽찬양 담당
1947년~1949년남대문교회 중등부 담당, 약300여명으로 부흥 성장함
1950년육군병원 예배 담당 및 봉사활동
1950년7월31일서울을 탈출하여 남으로 피난도중에 대구 북서방 5리 지점에서 매복중인 미군의 오해로 포로로 붙잡힘
1950년9월16일거제리 포로 수용소(지금의 부산 연제구 중앙대로 12001)에 수용됨
1950년12월거제리 포로 수용소에서 광야교회를 창립하여 별세때까지 목회
별세
1952년8월11일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에서 별세.
맹의순 선생 순직자 지정
경과보고
2018.4.6서울 노회장(서정오 목사)이 맹의순 순직자 지정 청원하다.
2018.5.17제102-2차 순교 · 순직자 심사위원회 회의시 순직자 지정 청원 건을 검토한바 순교자 · 순직자로 혼용되었기에 서류를 서울 노회에 반려하고 순직자 지정 신청첨부 서류에 "물증, 인증, 서증"의 참고자료를 자세히 보완하여 다시 접수하도록 하고, 다음회의에서 순직자 심사를 하기로 했다.
2018.6.28서울 노회장(서정오 목사)이 남대문교회 맹의순 선생 순직자 지정 신청을 위한 자료를 보완하여 청원하다.
2018.7.31제102-3차 순교 · 순직자 심사위원회 회의시 만장일치로 故 맹의순 선생을 총회 순직자 지정을
제103회 총회에 청원하기로 결의하다.
2018.9.13제103회 총회 제4일째 순교 · 순직자 심사위원회 보고에서 본회가 故 맹의순 선생을
총회 순직자로 지정하기로 허락하고 총회장 림형석 목사가 공포하다.
순직경위
해방 후 공산당을 피해 서울로 내려온 맹의순 선생은 아버지 맹관호 장로가 섬기는 남대문교회에서 중등부 교사로 섬기며 조선신학교에 재학중이였다. 6.25가 발발하고 서울이 함락되자 남쪽으로 피난가는 중 공산군 첩자로 오인한 미군에 잡혀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에 수용된다. 포로수용소에서 광야교회를 설립해 예배를 인도하고 포로들을 사랑으로 섬기던 중 1952년 6월~8월에 있었던 민간인 억류자 석방 때, 석방이 결정되었으나 석방 몇일 전 쓰러져서, 석방 하루 전인 8월11일에 수용소에서 뇌암으로 별세했다.
  • “맹의순 선생의 삶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생명 또는 신체에 대한 고도의 위험이 예측되는 상황에서도 사명을 끝까지 감당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석방될 수 있었던 상황을 거절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수용소의 중환자를 위문하는 사명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그의 사망은 순직의 목적에 부합한다.” 은 참 기독교인이고 순직자 이상의 참 순교자다.”
    (호남신대 최상도 교수의 순직자 신청에 대한 심사의견)
  • "영원한 청년 맹의순 선생님은 사명의 길 십자가의 길을 마지막 까지 순종하며 갔다. 원수인 중공군 포로에게 전도하기 위하여 미군의 석방을 거부하면서 사랑을 실천하다 세상을 떠나셨다. 그것이 맹의순의 사명이었다. 사명을 완수하지 않으면 죽을 수 없다. 맹의순의 삶과 죽기까지 그가 완수한 사명을 돌아보며 사명이 흐려져 가는 오늘날 우리에게 사명이 무엇인가 확인 할 수 있는 복된 계기가 되는 것이다.”
    (서정오 목사의 순직자 지정예식 "내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제하의 설교 中에서)
  • “하나님의 은혜로 남대문교회 성도들 가정마다 감사와 찬양이 샘물같이 흘러나게 하시고,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속에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총이 폭포수처럼 부어져서 주님의 은혜 속에 살아가는 감사와 기쁨이 넘치며, 주님의 피로 세우신 이 교회가 이 땅의 등불 되고 새로운 빛이 되어 어두움 가운데 헤매는 우리 민족을 주 앞으로 인도하는 아름다운 교회로 굳게 서기를”
    (박재훈 목사의 축도 中에서)
  • “맹의순 선생님은 천사이다. 전쟁이 일어나 이 땅이 초토화 됐을 때 그는 자신의 26년 삶을 번제물로 드렸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는 성령님께서 나를 도구로 사용해 쓰신 천사의 이야기이다.”
    (소설‘내 잔이 넘치나이다’의 저자 정연희 권사의 축사 中에서)
  • “맹 선생님은 26살 젊은 나이에 사명을 다하였기에 이 땅에 혈육이 한 명도 없다. 그에게서 기독교 복음의 진리를 배운 우리들이 살아서 선생님의 삶을 증언할 수 있을 때 늦게나마 순직자로 지정된 것이 감사하다. 맹의순 선생님은 참 기독교인이고 순직자 이상의 참 순교자다.”
    (맹의순 선생의 제자 정창원 은퇴장로의 회고사 中에서)